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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무. "고려파, 회개와 개혁운동"
 

고려파, 회개와 개혁운동



유해무 교수(고려신학대학원) 



본 글은 2003년 9월 17일 기독교보에 실린 글입니다.



작년 이맘 때 우리는 교단설립 50주년을 자축하였다.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우리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특별 기념예배와 기념식을 가졌다. 그 후 1년이 지나 다시 총회 를 맞이하면서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면, 50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자기 점검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노력은 지금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도리어 50년 전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한국교회를 개혁하려고 불가피하게 총노회를 조직할 때에, 그분들을 이교파적 이라 비난하던 한국 장로교회의 난맥상이 우리 고려파 안에 들어와 다른 모습을 하고서 곪아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고려파의 정신을 확인하고 파수하면서 존속할 책임을 지고 있다. 만약 이 정신에 대해서 자중심이 없다면, 고려파가 계속 존속할 이유가 무엇인지라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1. 우리는 당당한 신앙선배들의 후배인가?

1952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7회 총회로부터 축출을 당했던 우리 선배들은 그 해 9월에 총노회를 조직한다. 발회식 선언문에서 총노회는 해방이래 참된 회개운동과 신학운동 곧 칼빈이 시작한 개혁주의 운동을 계승하고 있다고 천명한다. “일정 말기에 떨어뜨린 여 호와의 영광, 유린당한 성도들의 신앙지조, 상처받은 심령에 자가변호와 자위적 논법으로 시대의 병적인 소위 진보주의라는 신신학 사상과 사이비한 복음주의, 허울 좋은 보수주의,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까지 사랑하여 달라는 화평론과 타협은 속화되어 가는 교권주의자들 로 하여금 교회를 현세생활처세의 도구로 삼기에는 편의가 될지는 모르나, 주님의 몸된 교 회를 믿음의 반석 위에 세우고, 생명의 등대로 세워 죄악으로 인하여 암흑에 빠져 있는 인 생들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횃불 노릇하기에는 합당치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들은 해방 직후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장로교 헌법정신으로 복귀하자는 운동을 시작하여 그 방법은 회개운동과 신학사상에 치중하였습니다.”

우리 선배들은 겸손하면서도 당당하였다. 이 선언문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순수하게 파수하여 생명의 등대로 세우려는 소명감이 깊이 서려 있다. 우리 선배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으나 개혁파 전통에 대한 넓은 안목과 확신을 가지고서 갖가지 비난과 코웃음(鼻笑)을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이 장로교회의 합동에 노력하던 중에 신학사상과 신앙노선을 따라 교회 행정이 갈라지는 불가피한 현상을 감수하면서 전통적인 장로회 총회를 계승하는 법통 총회 를 준비하기 위해서 총노회를 조직한다고 선언하였다.

우리 후배들에게 이와 같은 당당함이 있는가? 회개와 신학운동에 기초하여 한국교회를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있는가? 자기들을 이교파적이라 비난하면서 불가피하게 분리 단안을 내려도 그냥 비웃기나 한 한국 장로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의 위선에 대해서 당당하게 “진리 투쟁은 최후 일각까지며, 전진이 있을 것뿐이고, 후퇴는 없다”고 선언한 선배들의 자긍심이 후배들인 우리에게도 있는가?



2.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1956년 9월 ‘개혁운동 10주년 기념집회’와 더불어 총노회가 총회로 개편하였다. 우리 선배들은 고려파의 출발과 존재 의의를 회개와 개혁이라고 재확인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작년(2002년)에 가졌던 교단설립 기념식의 분위기는 회개와 개혁이라는 선배들의 입장과는 동떨어졌다. 후배들도 선배들과 같이 우리의 정체성을 한국장로교회의 ‘회개와 개혁운동’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개혁운동 10주년 기념집회 강사였던 박윤선 목사는 교회당 쟁탈 문제로 야기된 성도간의 법정송사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고, 개혁해야 할 현안으로 제시했다. 장로교회를 개혁하겠다 는 원대한 목표를 버리지 않았으나, 자신을 먼저 살피고 내부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자세는 두고두고 귀감이 될 것이다. 교회개혁이라는 구호는 요사이 한국교회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 럽게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남을 개혁하는 것이기 전에 자신을 먼저 개혁하는 것 이 개혁의 요체이다. 우리도 한국교회를 보기 전에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고려파의 역사는 신학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파라는 우리의 별호도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무리를 뜻한다. 이것은 신앙과 신학의 정통을 유지하고, 신학운동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개혁한다는 원대한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비록 소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고려신학교를 지지하는 교회들은 한국교회의 회개와 순수한 복음전파를 통한 교회개혁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신학교를 재정적으로도 후원했다. 그렇지만 이런 관심이 결국은 신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권의 결투장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계 속되고 있는 고려파 내 정치계파의 기원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교권주의자들이 휘두른 교권 의 희생자가 아니었던가? 이런 작태를 개혁하기 위하여 세운 신학교가 고려파 교권의 중심 이었다는 것은 한국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출발 정신과 상충되는 행위였다.

박윤선 목사가 주일성수 연고로 해임 당했지만(1960.9.), 그 이면에는 교권의 횡포가 자리잡고 있다.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고려파는 가장 중요한 개혁의 과제였던 송사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이미 사표까지 내고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박 목사를 곱게 맞이하지 않았다. 그 이후 평생 교권의 희생자였던 박 목사는 특히 이 점을 내내 잊지 못하였고, 교권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는 교회법 해설서를 쓰기도 하였다. 그의 해임은 고려파가 인재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거리의 첫 사건이라 하겠다. 신학운동으로 개혁을 실천함으로써 고려 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파하던 분을 교권 싸움에서 해임한 것은 고려파가 출범 취지에서 밝힌 존재 의의를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되었다. 그 이후 성도간의 송사도 끊이지 않고 있 다. 그 때부터 고려파 안에는 많은 문제들을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풀기보다는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분위기가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현재의 고려파 의 모습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다.



3. 고려파의 바벨론 포로  

고려파의 현실은 학교법인의 관선이사 체제로 대변된다. 고려파의 역사는 신학교 또는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권의 역사로 요약할 수 있다. 신학교와 대학교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 위에서 운영되고 있었는가? 우리 판단에는 그렇지가 않다. 병원의 확장과 대학병원화, 이의 기초가 된 의과대학 설립, 다시 이의 기초가 된 고려신학대학의 인가부터 어떤 일들이 있어왔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회개와 개혁운동이 우리 중에 펼쳐진 적이 있는가? 지금도 여전히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고려파의 역사와 현실은 신학교와 대학교의 흥망성쇠와 같이 하는 고리에 묶여 있다. 한국교회에 회개와 개혁운동을 펼치려던 장엄한 목표는 출발선을 넘자마자 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학교와 대학교의 운영에는 재정적이고 이념적인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금 교단은 난국의 진상을 온통 재정적인 측면으로 국한시키면서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려 하고 있 다. 물론 유지재단에 속한 총회회관을 담보로 하거나, 교회의 재산은 교인의 총유이기 때문 에 공동의회의 의결을 거쳐서 대출을 받는 것은 교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병원의 회생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정치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법인의 성격과 이념에 대한 분명한 논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법인 산하의 병원을 정상화하여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 에 대한 공감대가 신학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학교와 공동운명체인 고려파의 존재 의의를 간직하면서 스스로 회개하고 자신을 개혁하려는 운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병원사태로 인하여 우리 선배들이 언급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훼손되었 다는 사실을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우리 신앙의 지조 또한 유린당하고 있지 않는가. 소위 진보주의라는 신신학 사상과 사이비한 복음주의, 허울 좋은 보수주의, 하나님의 미워하시 는 것까지 사랑하여 달라는 화평론과 타협정신이 교권을 타고서 고려파 속에 들어왔고, 교 회를 현세생활 처세의 도구로 삼고 있지 않는가. 적어도 교회가 병원 정상화를 위한 도구 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현 사태에 대한 토론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일을 수습하는 과정 중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론적인 주장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접하였다. 과연 그런가?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는 개혁신학 의 후예들이 원론적인 토론과 주장에 철저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라 원래, 곧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신앙의 투쟁이었다. 우리가 원리주의자는 아니지만, 원리에 철 저해야 하기 때문에 원리에 대한 토론에도 철저해야 한다. 고려파 역사에서 초심의 원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흔치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더불어 토론하고 시행할 때에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선배들은 회개와 개혁운동을 진리운동이라고도 불렀다. 왜 신학교를 세워야 하는가? 이 문제 대해서 우리 선배들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칼빈주의 신학을 수립하여 한국교회 신앙사상의 혼란을 교정하고 통일시키는 신학운동을 하려고 하였다. 또 국가를 성경 진리에 기초하여 설립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통신학운동을 신학교를 통하여 펼치려고 하였다. 나아가 신학운동은 대학과 학문을 통한 문화운동인데, 이 또한 천국을 추구하는 정통신학운동이라고 보았다. 정말로 성대한 목표를 성경적으로 정초하고 개혁신학의 전통 위에서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 목표, 곧 고려신학교와 고려파의 정체성에 대한 분석과 평가도 비판적으로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여기에서는 약하기로 하겠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떠한가? 이런 원대한 목표는 설정하였으나, 이를 추진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결과가 고려파의 바벨론 포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학교를 설립한 선배들의 후배 신학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목표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기초가 부족하거나 설득력이 없다 보니, 제도적인 인가를 취득하고 학교와 병원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에만 치중하였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에 대한 원론적인 토론도 습관화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불법, 탈법, 편법’이 득세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안에 언제 원론적인 주장이 있었단 말인가? 시대사조를 역행하는 방식으로 고립과 핍박을 받는 것이 신사참배 거부정신의 계승이 아닌가? 현 사태는 갖가지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학교와 병원을 운영한 결과이며, 이 중심에 이사들 특히 목사 이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파의 정체성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고려파는 국가를 성경적으로 설립하고 칼빈주의 문화운동을 펼치기도 전에, 훈련 과정 중에 지리멸렬하게 내분에 휩싸인 군대와 같다.

선배들이 제시한 문화운동을 시도하면서 대학교와 병원을 파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돌아보자. 정비하고 제대로 된 병원과 대학교를 만들기도 전에 우리는 파국을 맞았다. 그렇게도 외쳤던 칼빈주의 문화관의 결과가 이것인가. 고려학원의 정상화는 재정적인 측면도 지니지만, 이념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 만약 이념적인 정비와 공감대가 교단 안에 확립되지 않는다면,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당당한 선배들의 후배들이 그 나마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신학교는 정치 회오리의 중심에만 있었을 뿐, 능동적으로 교단의 여론을 주도한 적이 거의 없다. 교단이 영적으로 위기에 빠져있는 지금에도 신학교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를 향하여 개혁을 외치기에 앞서 고려파의 내적인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교권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고려파의 정체성을 품고서 고려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박윤선 선배가 그리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법인이 교단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신학교 역시 한국교회의 회개와 개혁운동이라는 본래의 목표에 전념하는 날을 기다려본다.



4. 교회 연합이라는 시련

우리 선배들은 교회와 신학의 연합을 또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후배들이 책임지고 있는 고려파 안에서 개혁신학과 칼빈주의 신학이 비난을 받은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특히 교회 성장론이 유행하고 득세하던 80년대 이후부터 후배들은 이 전통과 선배들에 대한 자긍심을 잃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장로교회 전체를 일치시키려는 교회연합 운동이 점차 유행처럼 힘을 받아가고 있다. 이것은 또 다시 고려파의 정체성을 담금질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성경 비평을 수용하는 교단들로 구성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보다는 성경 영감을 믿으면 서 성경 비평을 거부하는 입장을 가진 한기총이 이 연합에 더 열심을 보인다는 기현상이 다. 여기에 고려파도 뒤지지 않고 있다. 고려신학교의 출범을 한국장로교회의 첫 분열로 보 면서 이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의 흐름이 반드시 진전이 아니라 퇴보 와 퇴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회개와 개혁운동의 주체가 되기는커녕, 회개와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면 먼저 베옷을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새로운 유행을 따라 황급하게 나서는 모습이 못내 서럽다.

불가피하게 분리하면서도 한국장로교회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선배들의 당당함을 이 문제에서도 후배들은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 선배들이 지적했던 한국장로교회 안의 난맥상이 그 사이에 크게 해결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논의되는 교회연합은 대의명분을 앞세운 투항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총회가 초기 고려파로 돌아가는 회개와 개혁운동의 기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서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선배들을 일제의 위협과 감옥에서 보호하셨던 삼위 하나님께서 학원과 병원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이다. 그래야 당당한 선배들을 따라 주체적으로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한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회개와 개혁운동의 주체로 거듭나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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