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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무. "한국신학의 자립을 향하여"
 

한국신학의 자립을 향하여



유해무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신학 분야에서는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서구의 어느 신학부나 신학교에 한국 학생이 없는 데는 없으며, 한국의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보수주의적 신학교에는 한국 학생이 감소하여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까지 돈 적이 있다. 그렇다 하여 수적인 측면만큼이나 한국 유학생들의 질적인 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국내의 신학 교육의 질은 크게 높지 않으며, 한국 신학계의 연구와 토론 수준에는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1) 서구의 신학자들은 한국 내에서도 양질의 신학박사들을 길러 내는 교육 기관을 설립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한다. 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거의 눈치밥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런 조언은 이중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다. 언어와 습관 그리고 문화와 교육 배경이 다른 서구에서 동양에서 온 학생들이 적응하고 천 수백 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그 신학을 제대로 전수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은 내용의 암기는 잘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확립하는 데에는 약하며, 특히 토론에는 아주 수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지적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신학 교육과 학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신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교수들의 책임이라고 여겨진다.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신학 연구의 현장이 우리에게는 아직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본지 2001년 11월호에서 에딘버러대학교의 앤드류 월즈(Andrew F. Walls) 박사는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는 신약 성경에서부터 항상 확장과 쇠퇴를 동시에 겪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가장자리인 주변부에서 새로운 확장이 이뤄지곤 한다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확장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복음이 확장되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형성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되지만, 그 특정 지역의 특정 형태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 갈라디아의 헬라인 성도는 굳이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이 헬라 문화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야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려고 세상의 모든 문화를 취하시는데, 이처럼 이미 있는 문화의 방향을 그리스도께로 전환하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렌즈로 볼 때, 기독교의 질은 새로운 중심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식민지를 경영한 경험이 없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또 한국적 세계관이 성경 읽기에 미치는 영향을 은폐하지 않고 노출시켜서 그리스도를 지향할 때 이것은 교회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예견을 한다.

한국인 교수는 한국 신학이 처한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반면에, 선교사 출신의 월즈는 한국이 맞이한 새로운 기회를 의미 있게 지적한다. 어떻게 보면 월즈의 이러한 주장은 80년대와 90년대에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21세기의 선교의 주역은 한국이라고 외치던 것과 흡사하다. 이것은 세계교회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국 교회가 성장할 때에 나온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지금에는 이런 자신감이 많이 위축되고 말았다. 이에 비하여 월즈는 그리스도의 형상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의 중심부가 지속적으로 변하면서 100년 전에는 미국이, 지금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와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이 중심부가 된다는 나름대로의 교회사적인 발전 과정을 제시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에 주어진 큰 가능성에 대한 고무적인 지적이다. 여기에는 한국 교회의 부흥이 전제되어 있다. 교회사의 시대마다 부흥하던 교회들이 기독교 고전들은 생산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부흥하는 교회가 신학의 고전을 생산해야 하는 책임도 지닌다는 뜻이다. 수많은 유학생들을 보낼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저력에 비하여 질적인 발전이 수반되지 않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큰 책임을 직시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1. 미국교회의 피선교지인 한국

물론 카나다와 호주 그 외 지역에서도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지만, 한국교회에 미친 미국 교회의 영향은 지대하다. 장로교만을 살필 경우, 한국에 온 초대선교사들은 구 프린스톤의 신학적 전통 속에 서 있으면서도, 무디(D.L. Moody, 1837-1899)의 부흥 설교에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신앙과 신학 훈련을 받았던 선교사들은 성경관에서는 보수적이었고, 부흥 운동에 호의적이었으며, 타교파에 대해서는 관대하였다. 이것은 미국 제 1차 부흥운동을 환영하였던 장로교 신파(新派)의 전통이며, 교회 연합 문제에서 신파 내에서 신학파가 취한 입장이기도 하다. 선교사들은 대체로 신학적 자유주의나 성경 비판을 단호하게 배격하였으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신봉하였다. 이것을 전수받은 한국교회 목사들은 더 극단적인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고, 성경을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아예 제 멋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심화되었고, 교회론에 있어서는 독선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국 신학 교육을 맡았던 초기 선교사들이 얼마나 깊이 있는 신학적 훈련을 본국에서 받았느냐는 것은 중요한 논의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국운이 쇠하고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던 선교 현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격조 높은 신학 교육을 하기도 어려웠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본국 신학자들의 입장을 피선교지인 한국교회에서 전수만 하였을 뿐, 신학적 토론과 신학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까지는 정초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의 이론을 받아 간직하되 그것을 특유한 방식으로 보수하는 자세만을 취할 뿐, 토론을 배우지 못한 교회는 자기의 고유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대안을 개발하는 등의 창조적인 신학 작업을 전개할 수 없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심은 신학 교육의 수준에서 접근하면 현재의 한국 신학 연구와 교육의 현실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또 다른 측면은 아주 실천적인 목회 방향이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한국교회는 특히 60년대 이후 아주 실천적이고 성장 일변도의 미국식 목회 방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목회 방향은 신학과는 별 연관 없이 정립된 방법론을 도입한다. 여기에는 신학 연구나 토론을 통한 신중하고 비판적인 수용을 위한 노력이 없으며, 그냥 성장하는 현장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지배한다. 성장하고 성공한 미국 교회의 목회 방식이 그대로 한국 교회에 도입된다. 이로 인한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 현상은 도를 지나쳐서 아주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학 연구와 신학 교육은 마치 필요악(必要惡)의 수준으로 전락한 기분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월즈가 지적한 한국교회의 기회나 신학 연구 및 교육의 수준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를 조장한 배경에는 근대 학문 이념에 기초하여 정립된 분과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2. 근대의 산물인 분과학문으로서의 신학

근대 정신의 핵심은 수학을 지식의 모델로 보는 과학적 합리주의에 있다. 이러한 근대 학문의 이념을 창시한 자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이다. 그는 방법적 회의를 거친 사유하는 자아의 존재로부터 진리의 절대 부동의 토대를 찾는다. 사유하는 자아의 정신적 역량 속에서 사물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방법론적 규칙을 이끌어낸다. 그는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하는 직관을 바탕으로 사물들 간의 필연적인 관계를 찾아낸다. 이런 방법론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학문은 수학뿐이라고 한다. 오직 명석 판명한 것만을 참된 인식으로 여기려는 그의 태도는 방법론적 일원론을 구축한다. 그의 노력은 그의 형이상학적인 관심과는 관계없이, 경험적 사실을 최종의 근거로 보는 실증주의와 과학적 지식이란 인간의 주관적인 삶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객관주의를 낳게 된다. 이제 자연은 수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물체들의 힘과 작용의 담지자가 되고, 인간은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요 지배자가 된다.

그러나 수학에 기초한 근대 학문의 이념은 결코 명증적일 수 없는 형이상학적 관심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가운데 많은 부분을 학문적인 관심 바깥으로 내몰았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지상적 삶을 정위시키고 근거지워 주던 신적인 절대자를 학문의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였다. 따라서 형이상학과 인문학과 신학이 대학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따라서 엄밀한 탐구방법과 명백한 연구 대상이 있는 엄밀학으로 스스로를 재정비하여야 하였다. 이런 식으로 연구자와 연구 대상을 분리하는 근대학문의 정신은 철저한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다. 신학이 대학에서는 종교학으로 변하고 아니면 목회학으로 탈바꿈하여 신학교에서 가르치지만, 이론과 실천의 괴리,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분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신학자가 목회 현장을 모른다는 말은 근대 학문의 발전 과정을 보아서도 근거가 있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은 신학자의 몫이다.



3. 일상성의 신학

신학 연구와 토론이 한국교회 초기부터 정착되지 못하였고,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으로서 목회 방법이 득세할 수밖에 없던 상황은 근대학문의 이념에서 나온 학문론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분리를 극복하는 신학 방법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하겠다. 이를 위하여 교회 안에서 신학이 어떻게 정착되었는가를 살피면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신학’이라는 명사를 문헌상 최초로 말하는 이는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헬라인들이 날마다 보고 즐기는 신화(神話)나 국가적인 서사시(敍事詩)를 반성할 필요를 느꼈다. 고대 헬라 시문학에 등장하는 신들은 각양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철학자와 정치가는 시인들이 신화를 읊을 때 추구해야 하는 ‘신학의 개요’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 무대에서 배우는 시인이 써준 각본, 곧 신화대로 ‘신에 대해서 말한다(동사)’. 무대에서 배우가 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신학이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이다. 즉 연극 무대가 바로 신학함의 현장이었다. ‘말한다’는 것은 대사와 연기 전부를 통하여 신에 대해서 말함이다. 그런데 그 대사는 관중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시인이 미화하였을 뿐이다. 노골적으로 발산할 수 없는 관중의 욕망을 배우는 연기를 통하여 대리 만족시켜 준다. 우리의 가면극을 생각하라.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통하여 신에 대해서 말하지만, 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즐기는 주체는 관중이다. 더 소급하자면 연극 관중의 관람 현장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삶의 현장, 곧 일상성이 신학의 현장인 셈이다. 어떤 신은 머리에서, 다른 신은 허벅지에서 또 다른 신은 피방울에서 태어났다. 신들이 절도 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간통을 범하며, 인간을 섬기기도 한다. 인간의 모습이 신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신의 본성과 격에 맞지 않는 바를 시인들이 노래하고 연극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대중들은 즐거이 듣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일들이 신들을 기쁘게 하며,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신화는 不死的인 존재들의 본성과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허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처럼 신에 관한 시인들이 말하는 신화적 전통을 철학자들이 신의 본성에 맞게 비판하고 정비하려는 반성적 작업이 신학이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신학은 그런 난잡한 현장의 신학인 신화에 대한 반성적 비판, 곧 비신화화(非神話化)이다. 어원과 발전에서 보자면 반성적 작업인 신학은 항상 이차적이었다.

교회는 이런 배경을 가진 ‘신학하다’와 ‘신학’이라는 용어의 도입을 주저하였다. 그러나 결국 삶의 현장에서 ‘신에 대해서 말한다’는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런 연속성과 동시에 불연속성도 있다. 헬라 무대에서는 관중인 일반 대중의 생각과 욕망이 신에 관한 말의 출처이었으나, 교회는 하나님에 관한 말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직접 당신에 관하여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서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즉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성령님도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이 신학이라는 용어는 ‘세례’를 받았고 의미 전환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적대적인 삶의 현실에서 ‘신학하기’였다. 학문과 이론에 해당되는 서양말은 ‘말하다’에서 왔다. 즉 현장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원초적이다. 그리고 말에 대한 반성, 그것이 학문이요 이론이다. 성자와 성령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생생한 고백에 대한 반성인 삼위일체‘론’은 이차적 의미로서 신학이 되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신학하기의 터전이다. 우리는 말로서, 표정으로서, 봉사로서, 직장 생활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다. 물론 온 가족이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는 것도 신학이다. 성경 읽기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듣는 것이며, 찬송은 간증으로써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신학이다. 기도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는 신학이며, 우리의 예배와 경건 생활은 말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신학이다. 우리는 한 순간도 중단 없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신학자이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고, 지나치기 쉬운 우리의 모든 일상사가 다 신학이다. 가령, 우리가 숨쉰다는 것도 공기를 주셨고 폐를 활동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증거 행위인 신학이다. 한 순간도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 어찌 경솔하게 새치기를 할 수 있겠는가. 새치기는 도덕의 문제이기 이전에, 원천적으로 신학의 문제이다.

이처럼 고대교회에서 신학은 실천적이었고 이론과는 대립되지 않았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 묵상과 경건한 삶을 통한 실천이 신학이었다. 이런 것을 신학이라고 여기지 않으려는 태도는 근대 학문의 학문성에 지배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한다. 이런 현장에 대한 반성적 작업인 신학을 특정 부류의 신학자들이 맡은 셈이다.



4. 교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신학

우리는 신학 연구와 토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서양 신학의 방법론을 논평해야 한다. 비록 근대학문의 이념을 따라서 학문의 전당에서 서자 취급을 받고 있으면서도 굳이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추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져 있다. 그런데 고대교회에서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신학과 이를 반성하는 작업으로서의 신학이 긴장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처럼 분화되고 분리되기 이전의 신학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서양 신학은 헬라어계에서 라틴어계로 그리고 종교 개혁을 통하여 개신교 중심의 신학 역사가 지속되었다. 영국과 불란서를 거치면서 19세기에는 독일에서 기라성과 같은 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신학 발전의 꽃을 피웠다. 장로교 신학은 영국 웨스트민스터회의를 통하여 정립되었고, 이것이 미국을 거쳐서 한국에 다시 소개되었다. 미국 장로교 신학은 영국과 스위스에 의존적이었고, 후에는 독일에도 의존적이었다. 이제는 교회연합의 활성화와 독일교회의 정체로 인하여 미국신학의 뚜렷한 활약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짧은 개괄이지만, 신학의 발전은 교회의 융성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일본 신학의 수준이 우리보다는 낫지만, 교회의 배경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까지도 유럽 유학이 보편화되어 있던 미국 신학이 이제는 세계 신학의 본류에 합류하였다. 물론 교회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사상 가장 획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한 한국교회도 신학의 본류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음이 틀림없다. 한국교회에게는 이것이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내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신학적 자립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기회이고, 다른 편으로는 세계교회를 향한 신학적 책임과 기여이다. 물론 우리 속에 현존하는 많은 문제들을 우리는 백안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양면은 우리에게 선후의 문제가 아니고 동시적인 과업이다. 우리는 내부의 현안들 뿐 아니라 세계교회를 향한 공교회적 책임을 지기 위하여 엄청난 추월을 시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세계 신학의 본류에 진입하려면, 우리는 신학하는 자세에서 '식민지 상황' 또는 '구걸 근성'을 버려야 한다. 사실 명성을 떨친 신학은 그 신학자의 생활 세계, 곧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상적이고 경건한 이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신학하는 자세에서 비판적인 반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 명망을 지닌 신학을 마치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진리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면 신학 종주국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자신의 신학의 현장과 맞지 않아도 수정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다른 토양에서 이루어진 신학을 금방 근사하게 자기가 창작한 것인 양 치장한다. 더 큰 병폐는 이런 수준 높은 '모방 감각'으로 인하여 수준이 낮아 보이는 자생적 이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자기 나라 학자들의 말은 인용하지 않고 외국의 석학이 쓴 책만 인용한다. 이것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간접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즉 자기 정도의 실력일텐데, 보아서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심리적인 자조행위라 하겠다. 이는 창작이 얼마나 각고의 결실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소치이기도 하다. 콘텍스트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우리 상황에 창의적으로 변환시키지도 않고서 말이다. 어느 신학이든 수혈의 과정과 흡사하게 한국교회에 도입된다. 창의적으로 수용하여야만 혈액형의 치명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와 한국인의 심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는 이론적 작업이나 번역 신학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한국교회라는 구체적 상황은 이에 걸 맞는 이론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 한국 교회는 전도, 기도와 모이는 일에 열심이 특심이다. 서양교회와는 달리 한국교회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애찬과 식사의 교제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떡을 떼는 전통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좋은 풍습이다. 그러나 신앙 생활에서 나타나는 지나친 감정주의나 교회의 분열 현상 등은 그쳐야 할 모습이다. 교회 성장의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폐해들이나 국가적인 비리 사건에 많은 성도들이 개입되어 있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바로 이런 구체적인 현실을 반성적 작업인 신학이 담당하여 분석하고 좋은 것은 장려하고 나쁜 것은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런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한국인의 심성과 삶의 모습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한국학의 도움이다. 한국학의 연구 결과를 신학은 이용하되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이런 진지한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 한국 신학뿐 아니라 목회에서도 수혈 거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같은 피라 할지라도 혈액형이 다른 피를 수혈할 경우 생명이 위협을 받듯이, 혈액형과 토양을 고려하지 않은 문자적 번역과 이에 기초하여 남의 이론을 답습하는 것은 고유한 혈액과 토양, 곧 교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풀어낼 틀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의 외국 이론 읽기는 이처럼 위험하다. 교회의 일상적 삶을 무시함으로 평면적 분석만 하게 되고, 자체 내 토론과 합의의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종 결론을 외국 신학자의 권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는 근대 학문 이념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서양 근대 이후 수학적 학문 방법론은 기도나 명상 등의 종교적 실천이라든가 사람됨의 방법을 가르치는 전통 따위는 학문 세계의 관심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버린다. 이제는 논문이나 책을 조리 있게 잘 쓰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이야 어떻든 누구나 훌륭한 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 쉽고 평이하게 쓰는 글은 비학문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학자의 삶 및 실천은 학자의 글읽기 및 연구와는 분리되어서 아예 관심과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삶과 실천에 기초한 이론이 아니라 이론을 위한 이론을 가지고 학문과 학자를 평가한다. 신학을 연구하여도 성경적인 삶을 그 신학자가 그대로 구현한다고 단언하기 힘들게 되었다. 서양 학문의 발전 역사에서 나타난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이를 보물단지처럼 중하게 여기면서 신학을 '이론적'으로만 작업하려 든다.

현실이나 실천과는 동떨어진 학문의 발전은 학문을 세분화하면서, 인격 도야라는 측면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만을 양성한다. 이제는 학문 상호 간의 관련성이나 학문의 총체성을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른 학문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신학에서 편의상 분류되었던 4분류가 이제는 절대적인 경계점이 되어서 상호 토론이나 공동 작업이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교의학 전공자가 자기 분야에만 열중하면 되었지, 가령 성경 주석이나 교회사 또는 봉사신학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갖는 것은 쉽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관여할 경우 예상하지 못하는 비난을 당할 소지도 있게 되었다. 이리 하여서 전문화는 확보될는지 모르지만, 통일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실천을 기초로 하지 않은 신학적 작업은 상호 배타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된다. 교회와 목회의 현장에서 유리된 신학이란 근대 서구의 학문 발생에 입각한 사변적인 신학일 따름이다. 신학의 사변화는 신학이 철학 등 신학 이외의 제반 학문을 맹목적으로 지나치게 추종할 때 일어나는 것이 태반이지만, 한국과 한국교회라는 현실과 실천의 장을 무시하면서 외국의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 형성된 이론을, 무의식적으로 한국교회를 위한 이론으로 도입하는 경우에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실천 곧 교회의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자리를 잘 의식해야 하며, 신학의 통일성을 원리적으로 확보하여야 한다. 이 통일성은 신학이 교회를 위한 학문으로서 자신을 잘 다듬을 때 이루어질 것이다.



5. 고전 연구를 통한 신학의 자립

신학이 자립하려면 기독교 고전을 연구하여야 한다. 여기서 고전은 교회사적으로 부흥한 교회가 생산하였던 헬라/라틴 교부, 중세신학, 종교개혁자들, 영어, 불어 및 독일어 등의 언어로 쓰여진 고전들을 통칭한다. 만약 현장성과 이에 기초한 실천만이 강조되면 특수성은 부각되고 실천성은 강화될는지 모르지만 통시성이나 보편성은 확보되기 어렵다. 세계화가 배제된 한국화는 시대착오적이듯, 공교회성을 무시하면서 확립하려는 한국신학화 작업은 패배 정신의 산물일 수도 있다. 즉 실천의 자리요 신학적 작업의 배경과 힘이 되는 교회의 왕성을 통하여 교회 역사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신학적 유산을 창조하고 이를 전수한 교회와 그 교회의 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어찌 우리의 현실에 맞는 신학을 확립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형성된 기독교 고전들은 이미 우리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가 비로소 처음으로 성경을 읽는 행운아가 아니며, 비로소 처음으로 실천에 입각하여 신학의 이론을 정립해야 하는 불운한 자들도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앞서 많은 이들이 벌써 각자의 상황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교회를 섬기며 신학하며 교회를 굳세게 세워 나갔다. 우리가 이들을 읽는 것은 식민 지배자의 비굴한 자세가 아니라 이 전통을 당당하게 전수받음과 동시에 창의적으로 이 전통에 합류하여서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말하는 고전 공부는 근대적 학문 이론에 입각하여 수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전 공부는 글을 읽고 논문을 쓰려는 데에 일차적 목표가 있지는 않다. 고전이란 그 발생 저변에 있는 실천의 장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삶의 이론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고전 공부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이다. 이 공부는 지식을 획득하여 확장시키려는 목적 이전에 이 고전을 빗대어 선배 성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그들의 삶의 자세를 지금 이 곳에서도 구현하려고 하는 창의적인 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어떤 이는 이 고전을 한국말로 번역하는 수고를 해야 되겠지만, 신학은 근본적으로 삶 자체요 행위 자체이다. 고전은 죽은 과거를 웅변적으로 대변하는 비석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지혜와 힘을 얻게 하는 성령님의 손에 쥐어진 방편이다. 기독교 고전 연구를 고리타분한 고고학적 답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고전 연구가 공교회성의 확보에 큰 의미가 있다면, 기독교 고전 가운데서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얼마인가. 신대륙에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 했던 조상들과는 달리 현금 미국 신학계에는 고전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신학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 신학의 영향 하에 있는 한국 신학은 아직도 미국 신학계의 이런 방향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기독교고전을 공부하는 전통을 세워야 함은 당연지사이다. 그리고 직접 원전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고전이 얼마나 되는가. 그나마 번역된 고전들을 직접 읽기는 하는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은 장로교 목사는 몇 사람이나 될까. 사실 한국 칼빈주의자들은 정작 칼빈을 직접 읽지 않는다는 한 학위 논문의 지적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전을 번역하지도 않고, 번역된 작품들을 읽지도 않는다면, 신학의 자립화는 가시권 밖에 있다. 신학과 목회에서 외국의 이론을 맹종하는 자세를 극복하려면, 먼저 창의적인 고전 읽기를 정착하여야 한다. 맹목적인 답습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보다 더 공교회적으로 반성하기 위하여 선배들의 작업을 참조하는 창의적 작업으로서의 고전 읽기가 부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고전 문헌들을 확보하여야 하며, 이를 읽을 수 있는 언어들을 서당식으로 교육해야 한다. 언어와 이를 기록한 텍스트를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근대 학문의 장에서가 아니라 성도의 교제와 공교회적 관점에서 읽는다면, 한국 신학의 자립은 이루어지며, 이 자립화는 결코 편파적인 '동네 신학'일리 만무할 것이다.

공교회성에 기초한 한국 신학의 자립이 개혁신학이라는 전통에서는 어떻게 그 모습을 들어내어야 할까. 개혁신학은 개혁시대를 넘어서 중세와 고대의 고전을 기댈 때, 개혁과 개혁신학이 의도한 원래의 모습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개혁자들로부터 유래하는 개혁신학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한국교회를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섬기며 선도하여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이런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는 아주 단순하다. 성경 말씀에 의거하여 바로 믿고 제대로 행하자는 명백하고 용기 있는 자세를 말한다. 이제는 종교개혁이나 칼빈을 우리 신학의 원조로 보려드는 한계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누가 루터나 칼빈의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용하였는가를 중심 주제로 삼기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기 위하여 시대를 소급하여 이전 시대를 연구하며, 그 연구의 결과를 가지고 개혁자들을 다시 조명하며, 이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다시 반성하는 학풍을 길러야 할 때가 되었다. 즉 개혁신학을 한다는 말은 종교개혁을 연구하는 데에 주안점이 있지 않고, 이전 시대를 포함하여 다양하고 포괄적인 연구를 통하여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떤 루터와 칼빈이 요구되어지는가를 자문자답하는 신학이 진정한 개혁신학이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토착화신학이라 하겠다. 비록 우리 것을 귀히 여기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지만, 번역적인 자세나 맹종적 태도에 근거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자세는 있을 수 없다. 또한 중세와 고대를 경원시하는 편협한 자세도 지양해야 한다. 성경은 주어진 소여로서의 삶의 현장과 실천의 장 그 자체를 바람직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말씀이 주어지는 그 순간 그 현장은 말씀의 초청을 받음과 동시에 심판 하에 있다. 이를 파악하지 못한 ‘토착화 신학’은 지역주의의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의 현장을 중시하되, 공교회적이고 창의적인 신학을 하기 위하여 뼈를 깎는 내적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6. 맺으면서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면서 하나님이 태초에 겨냥하셨던 사람이 되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바로 된 사람을 만드시려고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참다운 사람이 되는 신학의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사람이 되는 공부이다. 우리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경을 읽으며, 소위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공부하며, 교회를 섬긴다. 신학자가 현장인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남을 세우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이 참 사람이 되는 수행 과정이기도 하다.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신학의 자립화는 의미를 지닌다. 내가 수양하는 방편으로서 고전을 연구하고 개혁신학을 발전시켜야지, 학문 업적이라는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참 사람의 모습은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는 것이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얻는다(딤전 4:16 참조). 근대학문 이념은 이런 길을 추구하지 않는다. 신학도가 분과 학문에만 급급하고, 경건 수행을 게을리 하고 교회 현장을 도외시한다면, 이것은 크나 큰 모순일 것이다. 외국 신학의 특파원이나 안테나 노릇을 하지 않고,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신학의 자립화를 추구해야 하는 우리는 우리의 실천의 장인 한국교회를 귀히 여기고 반성하여서 새로운 고전을 생산함으로써 세계교회를 섬겨야 할 것이다.

 

 

 

 

 

 

1). 김세윤, “다시 튀빙겐에 와서 고국을 생각함”, 본지 1999년 12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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